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고 그러고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이라고 그러잖아요? 언제 이들은 한반도에서 거기로 간 건가요 이들의 자세한 역사를 알고 싶어요

조선족과 고려인의 차이점은 머죠?
중국에 '조선족'에 있듯이 러시아와 독립 국가 연합에선 우리 교포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릅니다. 왜 고려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카레야(한국)에서 나온 말인 듯싶습니다.
1. 한반도에서 사할린으로 (군징용 노동자)
1939년과 45년 사이에 약 72만 5천 명의 한국인 일반 노동자와 14만 5천 명의 군징용노동자가 동원되어 한국 국내와 일본, 중국, 사할린,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의 광산·건설현장·공장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많은 노동자들이 전쟁 마지막 해에 터널, 비행장 혹은 다른 시설의 긴급 공사현장에 징발되었으며, 공장이나 군대의 매춘굴에 끌려간(혹은 "자원하도록 격려받은?) 여성과 소녀들의 수에 대해서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줄잡아 100만 명에서 150만 명의 한국인이 징발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민족을 뿌리째 뽑고자 하는 이런 대규모 징발의 일환으로서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15만 명의 한국인을 광산이나 비행장 혹은 다른 군사시설 건설을 위해 사할린으로 보냈습니다.
2. 사할린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1940년대 스탈린 정권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여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등의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고려인입니다.
지금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고려인들은 보통 교포 3, 4세 정도입니다. 그들 중 사할린이나 중앙아시아 지역 출신들의 고려인들은 조금씩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 성장한 고려인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한국이라 한인들의 연해주로의 이주 시작에 대해서는 1862년, 1863년, 1864년 등 여러 학설이 존재하는데, 이는 당시 제정 러시아와 조선 간에 공식적 외교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부정기적으로 혹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나들어도 그 수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널리 알려지고 있는 학설은 한인 농민 13 가구가 1863년 겨울에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인 노보고르드(Novogord)에 정착한 것이 이민의 시초라고 주장합니다.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원동지방으로 한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아무르강 지방이 아이훈 조약(1858), 연해주 지역이 북경조약(1860)에 의해 극동지방이 국제적으로 러시아의 영토가 되면서부터입니다. 교포들은 이주 경위에 따라 첫째, 1860년 초부터 가난과 일제의 탄압을 주로 피해 북한지역에서 연해주로 넘어갔다가 1922년 연해주지역의 소비에트화로 국경이 폐쇄되자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부류와, 둘째 1939년-1945년간 사할린에 강제 징용되었다가 억류된 남한 출신으로 구분됩니다. 이렇게 독립국가연합 내에 형성된 한인은 약 45만 명에 달하며 사할린에 거주하는 수 천명의 무국적 혹은 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거주지역의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연해주지역 교포사회가 전통적인 생활모습을 상실하기 시작한 것은 스탈린의 농업집단화 정책 및 러시아화정책이 본격화된 1928년 말부터입니다. 스탈린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레닌의 '신경제정책(NEP)'을 버리고 급속한 산업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추진하기 위해 중앙통제적 계획경제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러한 스탈린 체제의 구축은 교포들의 경제활동 및 기타 문화활동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는 1937년 9월에 시작하여 12월 중순에 완료되었습니다.

독립국가연합 내 체류자를 포함한 전체 한인 수는 461,145명이며, 이중 교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크공화국과 카자흐공화국입니다. 우즈벡 공화국 수도인 타슈켄트 부근의 집단농장에는 한인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카자흐 공화국에서도 수도인 알마타와 동북부 우슈베토 지방에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은 광복 2, 3년 전에 강제로 동원되어 탄광에서 일한 동포들로 광복 후 미국과 소련 간의 협정에 의해 일본인은 전원 일본으로 귀국하였지만 한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게 된 교포들로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에 배신당하였으며 독립된 조국에서도 버림을 받았고, 동포라고 믿었던 '큰 땅치'(중앙아시아의 한인)에게서도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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