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임오군란 때 구식군대를 도왔는데 고종은 왜 임오군란 수습을 흥선대원군에게 맡긴 건가요? 고종 입장에선 흥선대원군이 싫지 않을까요?
임오군란과 흥선대원군: 왜 고종은 흥선대원군에게 임오군란 수습을 맡기지 않았을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임오군란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특히, 고종이 임오군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흥선대원군의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임오군란의 배경
임오군란은 1882년 조선에서 발생한 군사 반란입니다. 이 반란의 주축은 구식 군대인 훈련도감 군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개화정책으로 인해 차별을 받고, 급여 체불로 인해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 군란 배경: 개화정책과 군인들의 급여 체불
- 주요 세력: 훈련도감 군인들
흥선대원군의 등장
군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인정받고자 흥선대원군과 접촉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수하를 붙여 이들의 행동을 조직적으로 지도했습니다. 하지만 군란의 배경에는 기존 정치 지배층들이 진행한 개화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고종과 집권층은 군란을 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 흥선대원군의 역할: 군인들의 행위를 지도
- 개화정책의 문제점: 집권층의 개화정책으로 인한 군란
고종의 선택
고종은 흥선대원군에게 임오군란 수습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군란이 발생했을 때, 고종은 청나라 북양군 이홍장에게 지원병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와 군란을 진압했습니다.
- 고종의 대응: 청나라 군대의 도움 요청
- 흥선대원군에 대한 불신: 흥선대원군을 신뢰하지 않음
민씨 세도정치와 군란의 원인
고종은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이후 민자영(명성황후)에게 의지했습니다. 민자영은 자신의 가문인 여흥민 씨를 통해 국정을 장악했으며, 이로 인해 조선의 조세체계가 붕괴되고 군인들의 급여가 체불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 민씨 세도정치: 민자영과 여흥민씨 가문의 국정 장악
- 조세체계 붕괴: 군인 급여 체불의 원인
임오군란의 전개
군인들은 급여 체불에 분노하여 병조판서 민겸호를 처형하고, 민자영을 죽이려 했습니다. 민자영은 가까스로 탈출했으며, 고종은 청나라 군대를 불러 군란을 진압했습니다. 청나라 군대는 흥선대원군을 베이징으로 압송했습니다.
- 군란의 전개: 병조판서 민겸호 처형, 민자영 탈출
- 청나라 군대의 개입: 흥선대원군 압송
결론
고종은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을 신뢰하지 않았고, 청나라 군대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되었으며, 이는 조선의 역사에 큰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 고종의 결정: 흥선대원군 배제, 청나라 군대 요청
- 결과: 청나라의 내정 간섭 시작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임오군란과 흥선대원군, 그리고 고종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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