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쌍가락지 해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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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때 남자 측에서 신부에게 금으로 된 쌍가락지를 해주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옛날부터 무슨 유래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려주세요.

결혼할 때 쌍가락지 해주는 이유

결혼할 때 쌍가락지 해주는 이유?

'반지(斑指 혹은 半指)'는 원래 두 짝으로 이루어진 가락지(쌍가락지)의 한쪽인 '반半'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부녀자들은 주로 가락지를, 처녀들은 주로 반지를 착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가락지는 양반집에서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 친정어머니로부터 딸에게 가보로 전해지며, 자랑의 대상으로 소중하게 간직되었습니다.

금, 은, 구리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고 칠보로 장식되기도 한 전통적인 반지들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손의 움직임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신구가 되었습니다. 반지는 또한 다양한 길상 문양을 새기고 장식하여 기복과 염원을 상징화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가락지는 주로 손가락에 착용되었지만, 옷고름에 달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옷고름에 단 반지를 달아 '월패'라고 불리는 것은 아녀자가 남편에게 자신의 생리를 알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반지에는 애환과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부녀자들이 몽골로 끌려갈 때 부모와 친척들로부터 반지를 정표로 받아가며, 고려 여인들의 가락지는 몽골에서 대유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사화로 인해 가족들이 흩어지는 경우, 가족 구성원들이 가락지를 신표로 나누어 가지고, 나중에 죄가 씻어지면 혈육을 찾는 증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녀자들은 남편이 사망할 경우 가락지 한 쌍, 즉 반지 한 개를 관 안에 넣고, 나머지 한 쌍은 옷고름에 달아서 여생 동안 소중히 간직하며 한을 달랬다고 합니다. 저 세상에 가서 짝을 찾을 때 신표가 되길 기대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반지는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 쌍으로 제작되어, 착용보다는 상대적으로 크고 두툼하게 제작되어 오래 동안 소중히 보관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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